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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학의 새 단계』 개정판을 내면서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2』의 개정판 『민족문학의 현단계』와 함께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3’을 부제로 달고 나갔던 『민족문학의 새 단계』도 새로 간행하게 된 것은 나로서 큰 기쁨이요 도전이다. 도전이라고 말하는 것은, 처음 나왔을 때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보기 어려운 책을 30년이 넘은 오늘 다시 내는 일에 얼마나 많은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내용이 크게 달라진 것도 없는 개정판 발간이 한갓 종이 낭비가 아니라고 독자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남을 설득하려면 자신부터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자화자찬의 혐의를 무릅쓰고 한두가지 상념을 밝히려 한다. 제목의 ‘새 단계’라는 표현도 말해주듯이 이 책은 1975년의 평론 「민족문학의 현단계」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현단계 진단작업의 계속이다. 권두의 「민중·민족문학의 새 단계」(1985) 자체는 제목과 달리 아직 ‘새 단계’라고 규정할 만한 시기가 도래하지는 않았다는 취지였다. 광주민주항쟁을 겪고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의 급진화 등 새로운 상황이 곳곳에서 전개되며 문학에서도 전과 다른 뜻있는 성과들이 나타나고는 있었지만 새 단계가 임박했다는 조짐일망정 아직 새 단계의 도래는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이는 대다수 급진적 후배 세대 평론가의 진단과 거리가 있는 입장으로서, 내가 ‘소시민적 민족문학론자’라는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효과도 없지 않았다.

새 단계의 도래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한 것은 6월항쟁 이듬해에 발표한 「오늘의 민족문학과 민족운동」이었다. 뒤이어 「통일운동과 문학」(1989)이 그 논의를 더 상세하게 펼쳤다. 하지만 이때도 어느 특정 작품이나 작가군의 출현만을 기준으로 삼기보다 전체적 시대상황의 전환과 각종 문화적 여건의 변화, 그리고 국내외 한국문학의 성취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판단이었다.

1987년의 민주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계기로 한국사회가 일대 전환을 이루어 흔히 87년체제라 부르는 것이 성립되었다는 게 지금은 거의 정설로 굳어졌다. 문학에서는 뚜렷한 변곡점을 이루는 사건을 집어내기가 한층 힘들다. 「통일운동과 문학」도 그 어려움을 전제한 논의였는데, 6월항쟁 이후로 한국의 문예와 사상에 새로운 시대적 요구가 더해졌음을 강조한 것이 훗날 분단체제론과 분단시대 내의 시대구분을 더 본격적으로 시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이는 본서의 통일과 분단 논의가 아직은 한참 더 심화될 여지와 필요성을 남기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개정판 『민족문학의 현단계』에서 주장했듯이 그 무렵 내가 쓴 긴 평문들은 정세론과 작품론 그리고 필요한 이론적 성찰을 결합하려는 노력이었는데 본서에 수록된 글들에서도 그런 노력은 지속되었다. 1990년대 이후로는 사정이 좀 달라졌다. 한편으로 문학의 영역에서나 겨우 가능하던 언론활동에 대한 제약이 점차로 풀렸고, 다른 한편 나 개인의 경우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1994)을 필두로 문학평론과의 접점이 적은 글들을 따로 묶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그러나 본서의 내용이 생산된 80년대까지는 문학평론에 훨씬 몰두했을 뿐 아니라 당시의 중요한 작가와 작품을 꽤나 열심히 읽고 평했던 것 같다.

최근에 와서 한층 절실하게 느끼는 바지만, 오늘의 언론 상황이 더 좋아졌는지는 의문이다. 정치권력에 의한 직접적인 탄압이 6월항쟁 이후 많이 줄고 2016~17년 촛불대항쟁으로 거의 불가능해진 것은 사실이다. 새 정부 아래 어떤 반전 시도가 이루어질지는 아직 모를 일이지만 옛날처럼 당국이 언론기관에 직접 개입하는 세상으로 되돌리지는 못하리라 본다. 반면에 자본의 위력이 나라 구석구석으로 퍼져들어가 언론인을 포함한 사회 엘리트층의 체질을 바꿔놓고 언론뿐 아니라 지식계 전반이 기득권 카르텔에 가담한 징후가 두드러져가는 가운데, 공식 언론매체들이 진실을 추구하고 진리를 실현해주기를 기대하기가 1970년대, 80년대에 비해 오히려 어려워진 면이 있는 것이다.

이 현실에 대한 대응이 나의 70, 80년대식 그대로일 수 없음은 물론이다. 당연히 새로운 상황에 대한 객관적이고 세밀한 분석과 창의적인 대응책을 따로 내놓아야 한다. 동시에 지식 자체의 ‘매판성’을 적발하는 문학 특유의 후각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체질화되는 일이 긴요할 터이다.

1970년대 말엽에 쓴 글에서 나는 ‘매판상인’ ‘매판자본’이라는 용어로 출발한 ‘매판’의 개념을 한층 확대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형이상학이건 형이하학이건 지식이 진리 자체로 오인될 때 그것은 곧 인간에 의한 진리의 망각이며, 지식이 진리를 망각한 인간의 단순한 도구가 되고 기계가 됨을 뜻한다. 비유컨대 지식은 자기를 낳아준 진리를 배반하고 진리와는 남이 된 인간의 앞잡이가 된다. 한마디로 ‘매판’이 되어 ‘만백성의 살림마을인 대지’를 파괴하고 진리의 터전인 인간의 마음을 황폐화하는 것이다”(「역사적 인간과 시적 인간」,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1』 236면)라고 나는 첫 평론집에서도 주장한 바 있는데, 그 초심은 1980년대에도 변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대로다. 나 개인과 글의 부족함이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리 심각하다 할지라도 그 점에서는 지금도 일정한 희소가치를 주장할 수 있지 않은가 한다.

 

제2부의 「영미문학 연구와 이데올로기」는 한국영어영문학회에서의 발제와 토론시간 답변의 기록인데, 토론자의 질의가 복원된 한층 충실한 문답 내용이 『백낙청 회화록』 제2권(창비 2007)에 실렸기 때문에 본서에는 발제문만 실었다. 그밖의 내용들은 초판 그대로다.

이 개정판이 정편집실 김정혜 실장의 지성스러운 교정을 거칠 수 있어 고맙고 다행스럽다. 이번에도 강일우 사장의 결단이 필요했고 문학출판부 전성이 차장, 박지영 과장 등 여러분의 노고가 많았다

글을 쓰고 책으로 묶는 일에 수많은 분들의 은덕과 희생이 있었음을 기억한다. 일일이 거명할 수 없을 정도인데, 그중에 이미 고인이 된 분들도 참 많다는 사실이 새삼 떠오르고 근년에 부쩍 많아진 슬픈 현실이 눈시울을 적신다. 금생에서 허락됐던 인연에 감사하며 명복을 빈다.

2022년 5월
백낙청 삼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