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칼럼

[회화록] 현역 비평가 백낙청의 창조적 통일운동론

현역 비평가 백낙청의 창조적 통일운동론

한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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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청 선생의 고희를 맞아 다섯권짜리 『백낙청 회화록』(창비 2007)을 출간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팔순을 기념하여 그 후속편인 6, 7권을 묶어내게 되었다. 제6권인 이 책은 2007년 10월부터 2012년 4월까지의 총 31건 649면에 이르는 대담과 좌담, 인터뷰와 토론 등을 수록하고 있다. 4년여의 방대한 기록에서 본격적인 문학논의보다 사회적·정치적 주제, 특히 통일운동과 새로운 체제와 관련된 논의가 주종을 이룬다. 하지만 문학과 인문학 전반을 통합적으로 사유하는 선생 특유의 언어는 여기서도 어김없이 확인되며, 선생이 심혈을 기울여 내놓은 통일운동론과 체제전환론의 중심에는 문학비평적 통찰과 예술적 창조성이 깃들어 있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선생은 문학평론가이자 영문학자로, 계간 『창작과비평』의 편집인으로 50여년을 한국 문학계와 시민사회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민족문학운동과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왔고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담론을 개발해왔다. 『창비』를 통해 개진된 리얼리즘론, 민족문학론, 분단체제론, 근대적응·근대극복의 이중과제론, 87년체제론, 변혁적 중도주의론, 2013년체제론 등의 ‘창비담론’에는 선생의 열정과 고뇌가 깊게 배어 있다. 정치하되 하나같이 통념을 벗어나 있어 이해하기가 만만찮은 이 담론들은 서구 중심부의 첨단 이론들을 수용하여 적절히 개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해방과 분단체제 극복의 큰 원(願)을 이루기 위한 이론적·실천적 능력을 ‘그날그날의 현장’에서 꾸준히 연마하고 창조적인 혁신을 통해 마침내 도달한 값진 결실이다.

사실 이른바 ‘창비담론’들은 그 하나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다른 것들을 들추어보지 않을 수 없는 면이 있다. 달리 말하면 이 담론들은 구체적인 현장과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진화해왔지만 항상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면서 일이관지(一以貫之)한다. 이는 자본주의체제 극복을 위해 평생에 걸쳐 이론적·실천적 사유를 벼려낸 맑스의 사상적 건축을 연상시킨다. 영문학과 문학비평을 전공한 선생이 독창적인 문학론뿐 아니라 전공자 못지않게 깊이있게 사회체제를 궁구하는 담론들을 내놓을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다재다능하다거나 천재라서 그렇다는 대답은 충분치 않다. 물론 선생은 경기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줄곧 천재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김제동 씨와의 대담에서 자신이 “노력파”일 뿐이며 “천재니 뭐니 하는 건 괜한 소리”라고 응대한다(본서 463면). 선생을 가까이서 지켜본 바로는, 진실은 그 중간쯤에 있는 것 같다. 집중과 일념이 천재의 징표라면 선생은 ‘노력형’ 천재가 아닐까 싶다.

창비담론들의 크고 정교한 체계를 이룩하는 데는 선생의 비범함에 더해 ‘한결같되 날로 새로워’지려는 노력도 중요하게 작용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현장에서 시대적 진실을 밝히려는 ‘현역 비평가’의 분투가 아니었으면 그렇게 독창적인 담론들을 내놓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현역 비평가’는 선생에게 따라붙는 여러 명칭 가운데서도 특별하고, 선생 자신도 이 이름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선생에게 ‘비평’은 일차적으로 문학비평을 뜻하지만, 그것이 사회비평이나 정치비평과 분리되지는 않는다. 비평이란 문학작품을 제대로 읽을 때나 사회변혁의 올바른 길을 찾을 때나 모두 필요불가결하고, 문학·문화·사회·정치·경제·역사·철학·종교·자연과학 등 인문학 전반을 통합적으로 사유하는 기본적인 지적 능력이다. 선생이 창간하고 오랫동안 편집책임을 맡았던 『창비』가 문학과 인문사회 전반을 함께 다루는 이중체재를 고수해온 것도 이와 관련 있다.

‘현역 비평가’에서 ‘현역’이란 연륜이나 권위에 안주하지 않고 비평의 현장에서 문학텍스트와 시대현실에 민감하게 반응함을 뜻하는데, 비평의 현장이란 삶과 투쟁, 학문과 수행의 현장과 다르지 않다. 50여년 이어진 선생의 비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장래를 내다보되 그날그날의 현장에 깨어 있고 시대마다 새롭게 주어지는 과제를 직시하려고 분투한다는 것이다. 선생은 『창비』 50주년을 맞아 편집인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학문과 비평의 현장에서는 여전한 현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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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청 회화록』을 읽었거나 선생과 대화나 토론을 해본 사람들은 선생의 말이 글 못지않게 정교하면서도 유연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글과는 달리 상대방과 말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종종 즉흥적으로 기지와 유머를 발휘함으로써 대화의 묘미를 끌어내기도 한다. 수십년 동안 선생의 글을 따라 읽고 자주 대화를 나눠본 필자는 선생의 화술의 비결이 사유의 깊이 못지않게 섬세한 감식력과 유연한 조율능력, 필요한 만큼만 말하는 절제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성악에 비유하면 보통사람들보다 갑절 이상으로 세분화된 음계와 넓은 음역을 구사하는데다, ‘노력파’답게 틈만 나면 발성연습을 하는 가수라고나 할까.

선생의 이런 뛰어난 언변은 기본적으로 비평적 능력과 맞물려 있다. 가령 콘래드의 「어둠의 속」 을 놓고 토론하는 자리에서 “비평에서는 맞는 얘기냐 틀린 얘기냐 하는 것보다도, 맞는 얘기를 하더라도 얼마나 ‘간을 맞춰서’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봐요. 그러니까 그때그때의 상황과 맥락에 맞는 이야기만 하고 더이상은 안하는 게 좋은 비평의 요건”(477면)임을 일깨우는 대목이나, 2009년 10월 존 케리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 초청으로 방미하여 미 국무부 관계자들을 만나고 돌아와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 측 태도가 문제가 있음에도 “어떤 때는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어떨 때는 하고, 이런 간을 맞추는 것도 우리로서는 하나의 훈련”(199면)이라고 지적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간을 맞춰서’ 말하는 것이 비평의 핵심이며, 이런 비평능력은 문학과 현실에 대한 리얼리즘적 훈련을 통해 연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선생의 말과 글을 처음부터 잘 알아듣기란 쉽지 않다. 필자가 그랬다. 1981년 미국문화원 강연에서 선생은 ‘미국의 꿈과 미국문학의 짐’이라는 주제로 로런스의 『미국 고전문학 연구』(Studies in Classic American Literature, 1923)를 상세하게 거론하면서 그 요지를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이 강연에서 처음으로 선생의 훤칠한 모습과 나긋한 목소리를 접한 필자는 기대가 컸던 탓인지 강연에 그리 공감하지 못했다. 적잖게 실망한 것 같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필자는 당시 선생에 대해 상반되는 두가지 상을 갖고 있었고 그에 따른 통념적인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하바드대학 영문학 박사 출신의 서울대 교수라는 상과 군부독재정권에 견결하게 저항해온 비판적 지식인이라는 상말이다. 전자로부터는 (모더니즘 이후의) 최첨단 미국문학에 관한 심오한 해석을, 후자로부터는 미제국주의와 군부독재정권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기대했다. 그런데 이도저도 아니었다. 문학청년으로 모더니즘과 실존주의에 심취했으며 까뮈와 싸르트르, 포크너와 헤밍웨이, 피츠제럴드에 심취했던 필자가 1980년 광주항쟁을 계기로 현실에 눈뜨기 시작하던 때였으니, 호손과 멜빌, 휘트먼 등 19세기 미국 작가들에 대한 로런스의 특이한 해석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강연을 듣는 내내 ‘하바드 박사라더니 웬 케케묵은 19세기 작가들 이야기냐’, 혹은 ‘광주의 어둠이 걷히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한가한 이야기를 해도 되나’ 같은 반발심이 솟았으니, 지금 생각하면 스스로가 가소롭고 민망할 따름이다.

서울대 영문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선생의 강의를 들으면서 반발심은 점점 이해로, 존경으로 바뀌었다. 1986년 6월항쟁을 전후한 혁명적 분위기에 휩싸인 탓에 전공 공부는 뒷전이었으나, 간혹 선생으로부터 격려도 받고 문학과 운동을 오가면서 양자가 상호침투하는 과정을 겪은 덕분에 그나마 선생의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하면서 창비 고유의 문학론으로 ‘전향’하게 되었다. 문학을 시대현실로부터 떼어내어 자율적인 영역으로 간주하는 모더니즘적 경향, 반대로 문학을 사회과학적 현실인식에 종속시키고 그렇게 파악된 시대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려는 경향, 양자 모두가 시대현실의 핵심적 진실을 드러내는 문학예술의 열린 길에 미달이라는 것이 차츰 명확해졌다. 또한 서구 중심부 국가를 모델로 분단국인 한국의 문학과 사회를 논하는 여러 관념론적인 발상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선생은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분단현실을 직시하지 않은 채 서구 중심부의 자유주의 모델을 보편적인 것으로 당연시하고 한국 사회에 적용하는 태도를 ‘후천성분단인식결핍증후군’이라고 꼬집어왔다. 필자가 그랬듯이 한국의 학계와 지식인사회 대부분이 이 심각한 증후군에 걸려 분단체제론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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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록』 제6권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앞두고 남측 수행단의 일원이었던 선생이 KBS TV와 인터뷰한 것으로 시작해서 2012년 4·11총선에서 야당이 패배한 후인 4월 28일 이해찬 전 총리, 윤여준 이사장과 함께 나눈 좌담으로 끝난다. 이 책에서 거론된 주요 정치·사회 사건으로 2007년 10·4공동선언, 2007년 12월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당선, 2008년 7월 11일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2009년 5월 25일 북한의 제2차 핵실험, 2010년 3월 26일 천안함사건과 5·24조치, 그해 11월 23일 연평도사건, 2011년 3월 후꾸시마 원전사고 등을 들 수 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이명박 정부 동안 남북관계가 악화일로였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물론 남북관계만 악화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심각한 양극화로 민생이 파탄나고 4대강사업의 여파로 생태환경도 열악해졌다. 이런 연유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무너지면서 민심이 이탈하기 시작했으나 야당은 이런 유리한 조건에서도 2012년 4월 총선에서 패배하고 만다.

선생은 2005~09년 동안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로서 활동하면서 새로운 방식의 통일운동과 세상을 크게 바꾸는 체제전환의 길을 집중적으로 모색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시기는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지 않았더라면 선생 자신이 창안한 한반도식 시민참여형 통일론—독일, 베트남, 예멘 등 어떤 분단국의 통일과도 뚜렷이 구분되는, 남북연합을 경유하는 통일의 길—을 실천하고 그 기조를 튼실하게 다질 절호의 기회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6·15공동선언을 무시하고 10·4선언을 부정하고 나아가 천안함사건을 종북몰이에 악용함으로써 남북관계를 망가뜨리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선생은 87년 이래 민주화와 자유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점점 기득권 중심으로 기우는 사회체제를 크게 바꾸는 ‘체제’전환의 이론화 작업에 집중한다. 즉 이명박 정부의 무책임과 무능력, 그리고 몰상식한 행태를 그 개인의 인격적 결함이나 정치역량 부족의 탓으로만 돌리지 않고 87년체제가 제때 바뀌지 못함으로써 빚어지는 말기적 현상으로 진단하고 그 극복방안을 고심해서 내놓은 것이다.

그 결과 이 책 후반부 곳곳에서 2013년체제론이라는 시대전환/체제전환 담론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시민참여형 통일론과 포용정책 2.0을 국내의 폭넓은 민주주의적 개혁과 복지·생태·기본교양의 과제들과 결합한 것이다. 87년체제의 민주주의적 개혁과 남북화해 기조를 지키고 한 단계 더 끌어올리되 그 부정적인 면을 극복하는 새로운 체제에 관한 선생 자신의 논의들은 『2013년체제 만들기』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2012년 대선에서의 야당 승리를 전제로 하는 2013년체제 자체는 실현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2013년체제‘론’까지 무효화된 것은 아니다. 실현 시기에 관해서는 선생의 바람과 예측이 빗나갔지만, 그 골자 중의 상당 부분이 2016년 가을 이래 촛불시민의 힘으로 실현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통일과 남북관계, 2013년체제 관련 논의들이 대부분인 이 『회화록』에서 특이한 접근방식의 문학논의가 눈에 띈다. ‘주체적 인문학을 위하여’는 콘래드의 「어둠의 속」 에 관한 선생의 강연 후 진행된 패널 질문과 토론을 수록한 것이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패널에 포함된 법학, 재료공학, 의학 전공 교수들의 ‘비문학적인’ 질문을 선생이 응대하는 대목이다. 가령 재료공학을 전공한 교수가 이 작품을 논하는 데 실제 콩고의 역사를 도입하는 것이 적절하냐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을 했을 때 선생은 “「어둠의 속」을 논의하는 그때그때의 상황과 대화 당사자에 따라서 달라진다, (…) 어느 경우든 「어둠의 속」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라야 좋은 작품비평이고, 「어둠의 속」과 관계없이 콩고의 현대사를 이해하는 데만 도움이 되는 거라면 그 자체로서 값진 담론일 수 있지만 「어둠의 속」을 구실로 문학비평이 아닌 다른 일을 하는 거지요”(490~91면)라고 명징하고도 유연하게 대답한다. 이런 대목들이 서양문학을 주체적으로 읽는 길을 제시하는 심오한 성찰(492면)과 결합되면서 선생 특유의 실사구시적인 문학 읽기 방식이 감지된다.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주최 ‘통일인문학’ 개념과 관련된 좌담은 인문학과 관련되기는 마찬가지지만 또다른 이유로 눈길을 끈다. 선생은 주최측으로부터 ‘통일인문학’이란 말을 듣고는 “어쩌면 제가 하고자 했던 일”이라고 반기지만 선생이 염두에 두는 인문학은 흔히 통용되는 개념과는 다르다. 가령 “인문학은 고등학교에서의 문과·이과 분리에 이어 대학의 편제가 인문계·사회계·자연계로 나뉘어 있는 상황에서, 사회과학도 아니고 자연과학도 아닌 인문학이 따로 있는 것처럼 생각을 하고 그 인문학도 다른 과학이나 마찬가지로 세분되는, 즉 각 전공분야로 가는 데 그 의의를 둡니다. 그런데 원래 인문학의 취지는 종합적으로 하는 거죠. 즉 자연에 대해, 사회에 대해, 인간사회에 대해서 종합적이고 다각적으로 이해한다는 것”(294면)임을 역설한다. 이런 인간사회에 대한 종합적 이해로서의 인문학 개념을 적용하면 “통일인문학이란 사실 그런 의미에서 통일을 종합적이고 실천적인 학문의 대상으로 접근하고, 그런 인문학의 주제로 통일문제를 택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한반도에서 그런 요소가 중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한다(294~95면).

이런 통일인문학적 접근방식은 시대와 현실에 대한 리얼리즘적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 한반도 분단체제를 놓고 월러스틴과 천 광싱 같은 해외 학자들과 나눈 대화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가령 팔레스타인의 분단이나 중국과 대만의 분리—이른바 ‘양안관계’—가 한반도 분단체제와 어떻게 다른지를 조목조목 짚는 대목(377, 416~19면)이 그렇다. 선생이 6·15공동선언(특히 제2항)을 마치 걸작 예술품 대하듯 섬세하고 정치하게 분석하고 그에 입각해서 남북연합을 경유하는 시민참여형 통일론을 전개하는 대목들도 그렇다. 냉철한 리얼리스트의 치밀한 운산법과 예술가적 직관, 인간과 역사에 대한 믿음이 함께 어우러진 것이 백낙청표 통일인문학인 것이다.

이런 의미의 ‘통일인문학’적 발상은 나중에 「인문학의 새로움은 어디서 오는가」(『창작과비평』 2014년 여름호)에서 더 상세하게 거론된다. 그 글에서 선생은 종합적이고 실천적인 새로운 인문학 교과목으로 ‘분단체제 연구’가 설치되고 그것이 여러 분야 전공자들의 ‘협동과정’을 갖춘 ‘분단체제연구대학원대학교’ 같은 특수대학교로 발전하는 광경을 잠시 즐겁게 상상하다가 “현존하는 대학과 교육 제도의 근본적 변화 없이 그런 특수대학교를 만드는 것은 분단체제연구의 자멸책이 되기 십상”(349면)이라고 결론짓는다. 선생이 그 대안으로 제시한 새로운 인문학 과목은 ‘비판적 한국어학’인데, ‘한국어 연마’와 ‘문학비평적 훈련’을 바탕으로 하는 전인적인 교양교육이다.

대학에 설치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 ‘분단체제 연구’와 ‘비판적 한국어학’을 결합하면 현재 선생이 실천하는 ‘통일인문학’적 비평에 가까워질 듯하다. 이 지점에서 일찍이 한반도 분단체제 극복의 일환으로서의 통일운동은 창조적 예술이 되어야 한다는 선생의 주장을 떠올리게 된다.

이 전대미문의 분단체제를 극복하려는 우리의 통일운동은 남달리 창조적인 운동이 아니고서는 성공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말하자면 통일운동은 하나의 창조적 예술이어야 하고 통일운동가는 누구나 예술가로, 역사의 예술가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운동과 문학」, 『민족문학의 새 단계』, 창작과비평사 1990, 129면)

『회화록』 제6권에서 마침내 드러나는 것은 바로 이런 ‘창조적 예술’인 통일운동을 전개하려는 선생의 비평적 고투다. 그리고 ‘회화’는 상황과 대상에 따라 자유자재로 구사되는 변조와 화법이 있어 글과는 또다른 재미를 준다. 동시대의 대표적 지성들—국내외의 다양한 학자와 정치인, 논객 등—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것도 유익하다.

韓基煜|인제대 영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