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책머리에] 민주·자주·통일의 제자리 찾기
남북한 정권이 모두 속마음은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을 심심찮게 들어왔다. 우리 정부가 선포한 8·15 전후의 ‘민족 대교류’ 기간을 앞두고 지금 남쪽에서는 북한방문신청서 접수창구가 미어질 지경이다. 며칠 안에 드러날 사태의 귀추를 섣불리 점칠 생각은 없지만, 남쪽에 사는 우리들의 일차적 책임사항인 남한 정부의 태도만 하더라도 석연찮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상대방과 협의를 안 거친 일방적인 극적 제외는 않겠다고 선언했다가 야권통합 움직임에 때맞춰 뒤집은 것도 그렇고, 범민족대회 문제를 갈팡질팡하는 꼴도 그렇고, 국가보안법을 출판탄압·인권탄압의 보검으로 계속 휘두르고 있는 것도 그렇다. 게다가, 내막을 직접 확인할 길은 없지만, 북한측의 대응 역시 대승적이라는 인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남북의 정권이 모두 통일에 뜻이 없으니 믿을 것은 민중 자신의 민주·자주·통일 운동뿐이라는 갸륵한 다짐도, 큰 원칙의 표명 차원을 넘어서면 실속없는 구호가 되기 쉽다. 정권과 민중이 각기 딴 나라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며, 남북의 정권이 모두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도 문자 그대로 사실은 아니다. 통일을 원하되 자기 식의 통일을 원하는 것이요, 스스로 정해놓은 ‘자기 식’을 수정할 여지나 수정해야 할 명분은 남북 각각이 대목마다 다르고 또 주변정세와 내부사정에 따라 가변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막연히 양쪽 모두 통일을 기피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각기 어째서 어떤 통일을 기피하고 있으며 어떻게 이를 고쳐나갈지를, 그야말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으로 탐구하는 일이 90년대 우리들의 과제라 하겠다.
그렇게 볼 때 80년대를 거치면서 민족민주운동의 목표로 일단 합의된 ‘민주·자주·통일’에 대해서도 새로운 자리매김이 필요해진다. 돌이켜보건대 이 표어가 공유되기까지에는, ‘민족·민주·민중’을 다소 나열식으로 제시한 이른바 3민노선이 ‘반미자주화·반파쇼민주화’ 운동과 ‘반제반파쇼 민족민주’ 운동으로 분화되는 과정이 있었다. 그러다가 6월항쟁 기간의 대동단결을 체험하면서 적어도 공통의 표어나마 내걸게 된 것이 ‘민주·자주·통일’이다. 이를 ‘3민’과 비교해보면, 한편으로 ‘민주’와 ‘민중’이 ‘민주’라는 하나의 낱말에 수렴되어 그간 민중민주주의자들에 의한 민주주의 개념 확장 노력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자유민주주의적 개혁세력도 포괄할 수 있는 탄력성이 늘어났고, 다른 한편 ‘민족’은 ‘자주’와 ‘통일’의 둘로 분화됨으로써 민족통일의 과업이 명시되고 반미자주화투쟁의 문제에 새로운 비중이 실리게 된 셈이다. 그러나 민주·자주·통일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아직껏 정파마다 해석이 다르고 그 어느 해석도 대중적 호소력이 뚜렷하지 못하다. 그런 점에서 여전히 ‘나열식’이요 절충주의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상태이다.
90년대 운동의 성패는 바로 이런 비판을 이겨낼 자기점검과 자기확립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세가지 목표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이고 어떤 상호관련인지를 새로 따져봐야겠으며, 이는 또한 ‘민주·자주·통일’이 절충적인 구호에 머무는 동안 아예 고려의 대상에서 멀어진 과제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반성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런 과제들을 그야말로 나열만 해본다면, 무엇보다도 반쪽으로나마 이만큼 굴러오며 자라온 남한사회의 경제와 민생을 어떻게 꾸려나갈지의 문제다. 이제까지 그것은, 민주화가 되면 그때 가서 더 좋은 해결책이 나올 터이고 그전에는 정부와 재벌과 외세가 잘못하는 것을 비판만 하면 되는 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다른 한편 당장에 먹고 사는 문제와 동떨어진 듯하면서 사실은 모든 사람의 먹고 사는 문제, 안 죽고 살아남는 문제인 생태계의 위기와 평화 등 전인류적 과제 역시 ‘민주·자주·통일’의 표어에는 극히 부분적으로밖에 반영되지 않았다. 또한 여성해방론의 관점에서는 세가지 목표 모두가 남성중심사회의 낡은 사고방식으로 이해되는 것을 막는 아무런 장치가 없음을 지적할 수 있을 터이며, 그날그날의 살림 문제나 생태계와 평화 문제가 소홀히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할는지 모른다.
이런 생각들은 다시 민주·자주·통일 각기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검토를 요구하게 된다. 예컨대 ‘민주’를 제한된 법치주의적 개혁에서부터 ‘노동해방’으로까지 각양각색으로 풀이하는 다양한 세력들은 과연 어느 정도로 뭉칠 수 있을지, 통일 이전과 이후 그리고 통일운동의 진전상황에 따라 그 앞뒤 순차를 조절할 수 있는 ‘민주’인지를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자주’의 경우도 그것이 3대목표의 하나가 된 것은 80년대 운동의 진전에 따른 현실인식의 구체화를 말해주지만, 분단체제와 세계체제의 작동방식에 대해 아직도 다분히 관념적인 인식을 반영한 면도 없지 않다. ‘통일’이 다른 목표들과 고립된 구호가 되어서는 안됨은 더말할 나위도 없다. 전에는 구호 자체도 전혀 무익하달 수 없었지만, 서독에 의한 동독 합병 이후 기득권세력이 ‘독일식 분단고착’이 아닌 ‘독일식 통일’에 점차 열을 올리는 마당에 ‘통일’ 구호로 저들의 들러리를 서주거나 그게 싫어서 통일의 명분에서도 저들에게 밀릴 위험이 90년대의 현실로 된 것이다.
본지는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새로운 년대가 요구하는 거시적인 작업과 미시적인 작업을 두루 해나가고자 한다. 이번호 권두좌담은 굳이 따진다면 후자쪽이다. ‘새로운 년대의 문학을 위하여’ 최근에 나온 작품들을 성실하게 읽고 정직하게 평하는 풍토를 차근차근 다져나가자는 기획인 것이다. 좌담과 더불어 한만수씨의 신경림론도 진지한 실제비평의 자세를 보여줄 것이며, 이영호씨의 논문 또한 비록 작품평가가 아닌 역사학도의 분석임을 전제하고 있으나 문학독자에게도 많은 배움과 즐거움이 되리라 믿는다. 지난호에 지면사정으로 싣지 못한 이상경씨의 임화 소설사론 비판은 국문학도로서 세심한 연구와 중대한 현재적 문제제기를 담았다. 임진택씨는 80년대 연희 예술운동의 주역 가운데 하나로써 80년대 벽두에 「새로운 연극을 위하여」를 『창비』 봄호에 기고하기도 했는데, 10년여 만에 나오는 이번의 반성적 점검은 90년대를 위한 때마침의 이바지가 되리라 믿는다.
이들 평론에다 민영·황광수 두 분에 의한 신간 작품집 서평과 「씨네마 천국」 「남부군」 「장군의 아들」 등 한창 관객을 모으고 있는 영화들에 대한 안정숙씨의 평까지 겹쳐, 이번호의 구체적 작품논의는 한껏 풍성하다. 그러나 행여 이것이 ‘거시적’ 이론정립을 소홀히하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되겠기에, 불원 다른 자리에 선보이게 될 백낙청씨의 장문의 리얼리즘론 중 「사회주의 리얼리즘론과 엥겔스의 발자끄론」을 필자와 그 논문집 간행위의 동의를 얻어 본지에 게재하기로 했다. 여성해방문학론을 다룬 조애리씨의 서평과 더불어 90년대의 이론적 작업에 보탬이 되리라 본다.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많은 글을 싣지는 못했다. 대신에 ‘한국사회 계급론의 쟁점’ 연속기획에 두 편의 알찬 논문을 얻어 무척 다행스럽다. 유팔무씨의 「지식인과 교사의 계급적 성격에 관하여」는 처음부터 이 기획의 이론적·실천적 의의에 유념하면서 기왕의 토론을 한 발자국 더 진전시킨 글이고, 마친 전교조 해직교사인 도종환시인의 서평과도 어울려 흥미를 더한다. 한편 타끼자와씨는 『창비』 독자들에게 이미 낯익은 이름인데, 우리 학계에서 아직 실증적 연구나 이론작입이 모두 부족한 ‘계층구조의 지역적 특질’에 관한 역작을 기고해주었기에, 필자가 본래 특집을 위해 집필한 것은 아니지만 그 일부로 읽는 것이 더욱 흥미로우리라 생각되었다. 게다가 『창비』와 구면인 또하나의 반가운 외국 이름인 브루스 커밍스씨의 이색적인 ‘독자의 편지’는 한국전쟁의 의미에 대해서나 우리의 출판계와 지식계의 풍토에 대해서나 많은 것을 반성케 해준다.
문학작품으로는 최형·이가림·김광규·곽재구·고형렬 제씨의 근작시편 외에 이대환·원명희 두 신예의 야심작을 얻어 자랑스럽다. 대규모 제철공장에서의 노동투쟁을 다룬 「철의 혀」와 낙후된 어업계에서도 가장 밑바닥의 현실을 그린 「먹이사슬」은 둘다 소위 민중문학적인 소재나 의식이 소설의 재미와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음을 새삼 실감케 해준다. 아울러 80년 폐간 당시 희곡 「토선생전」으로 등단한 안종관씨가 십년만에 새 장막극을 써낸 것은 경하할 일이다. 그동안 본지가 희곡 작품을 게재한 바 없는 것이 우리나라 창작극 분야의 상대적 빈곤과 전혀 무관하달 수는 없으나 역시 편집진의 소홀함이 컸다. 안종관씨의 재기가 좋은 인연이 되어 앞으로 훌륭한 희곡들을 싣도록 힘쓸 작정이다.
『창작과비평』1990년 8월 가을호 책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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