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창비 책머리에] 창간 스물세 돌을 맞이하며

이번호로 계간 『창작과비평』은 스물세 돌을 맞는다. 작년 봄에 복간된 지 1주년을 기년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8년간의 강제폐간을 빼고도 1966년 1월의 출범 이래 숱한 역경을 헤쳐나온 끝이라, 편집자들 이외에 애독자 여러분들도 새삼스런 감회가 있으시리라 믿는다. 또한, 23년만에 어렵사리 통권 63호를 채우는 잡지도 잡지려니와, 74년 1월에 처음으로 등록을 낸 도서출판 사업 역시 85~86년 사이에 강제폐쇄까지 겪으면서 국내외 수많은 분들의 심려와 성원으로 이제 열여섯 해째에 접어든 것이다.

이처럼 여러모로 뜻깊은 대목에서 우리는 그간 우리 자신이 알게모르게 입어온 여러 사람들의 은덕을 되새기면서 그에 걸맞는 앞날의 전진을 새롭게 다짐하고자 한다. 이땅의 문학사를 보나 잡지의 역사를 보나 일개 계간지에 이만큼의 공덕이 쌓이고 모인 전례가 없었다. 그것은 어떤 개인적인 보은을 바란 기여가 아니고 무엇보다도 이땅의 현실이 요구하는, 양심과 수준과 역사의식을 갖춘 문화적 구심점을 키우려는 충정에서 나온 이바지였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창간 23주년을 맞은 시점에서도, 이제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히 필요해진 구심점으로 튼튼히 자리잡는 것만이 우리에게 쏟아진 정성에 부응하는 길일 터이다.

일부에서는 우리의 이러한 사명감을 70년대에 『창비』가 민족문화운동의 거의 유일한 매체로서 누리던 위치를 되찾으려는 부질없는 꿈이 아닌가 묻기도 한다. 사실 70년대의 『창비』는 (당사자의 자기도취를 약간 섞어서 표현한다면) 구심점이자 선봉이었다. 그것말고는 이렇데할 매체가 간헐적으로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곧,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구심점이라기보다 아직도 바닥이 좁은 상황에서 독주자에 가까웠다. 그러므로 80년대에 들어와 수많은 소집단과 매체가 생겨난 것은 이땅의 건강한 문화를 위해 바람직한 진전이었고, 이에 『창비』의 폐간이 일조했다면 우리로서는 그만큼 더 흐뭇할 따름이다. 마찬가지로 본지의 복간을 전후하여 수많은 계간지·월간지들이 새로 나와 지금은 하나하나 기억하기조차 힘들어진 것 역시 일단 바람직한 현상이라 본다.

하지만 그럴수록 일정한 구심작용이 아쉬워졌다는 것이 복간호 이래 우리의 일관된 인식이고, 온갖 선도적인 목소리와 눈을 끄는 성취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을 종합하고 정리하는 역할에는 아직껏 『창비』만한 적격자도 안보인다는 것이 우리나름의 겸손을 다한 긍지이기도 하다. 우리가 그 몫을 해낼 수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89년 새해의 숨가쁜 정세는 아무튼 더 이상의 지적 방황과 경륜없는 대응을 허용하지 않는 고비에 우리가 다다랐음을 실감케 해준다. 문화 분야에서만 해도, 아직도 몇가지 원시적인 금기가 그 흉한 몰골을 보이고 있으나, 돌파와 확산만으로 이룰 만한 것은 불원 다 이루어지리라는 전망이 확실해진 대신에, 이처럼 풍요롭고 다소는 어지럽게 벌여놓은 일들을 어떻게 꿰어맞춰 우리 삶의 보배로 만들지가 바야흐로 심각한 문제로 되고 있다.

사회정세 전반으로 눈을 돌리면 더욱이나 그렇다. 현란한 ‘북방정책’으로 국민들을 거듭 놀라게 만드는 정부나 재계가 스스로 통일에 대한 뚜렷한 설계가 없는 것은 오히려 당연할는지 모른다. 문제는 야권의 지도자나 학계·언론계 등에서도 앞으로 남북교류와 사회주의권으로의 진출 문제를 통일 사업에 연결시킬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민주화·자주화·통일을 뚜렷한 목표로 내세운 운동세력조차 이들 목표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종합하고 실현할지 경륜있는 대응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이미 폭넓은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 ‘5공단절’의 필요성이나 ‘광주’의 진상규명 요구에 관해서도 대국적 방향감각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최소한의 눈가림만으로 어물쩡 넘어가보려는 정부·여당 및 일부 야당세력은 더말할 것 없고, 그런 눈가림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쪽에서도 ‘5공청산’만 되면 6공의 정통성은 확립된다는 입장에서부터 5공과 6공에 대한 무차별적 규탄만을 능사로 아는 입장까지 중구난방에 가까운 상태라 하겠다.

이런 얼키설키를 풀고 가다듬는 몫을 『창작과비평』 같은 문학중심의 계간지가 떠맡겠다는 것이 허황되게 들릴지도 모른다. 물론 계간지의 한계도 있고 문학의 한계도 있다. 직접 일을 해나갈 편집자들의 한계는 더구나 엄연하다. 그러나 문학을 중심에 두기 때문에 부적격이라는 생각만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적어도 『창비』처럼 문학과 타분야의 연결에 처음부터 열중해온 잡지가 중시하는 문학일 경우, 그것은 단순히 현실에 대한 여러 가지 뜻있는 지적 대응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온갖 지적·감성적 노력의 중심에 자리잡고서 그 종합의 가능성을 본디부터 체현하는 작업이다. 그런 의미에서 탁월하게 변증법적인 작업이며, 『창비』의 8년 폐간이 문단에서건 사회과학계에서건 이런 인식을 후퇴시키는 데 일조했다면 그것은 문학의 후퇴일뿐더러 참된 과학의 후퇴로서, 그 어떤 부수적 보상이 있었더라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우리는 뒤늦게나마 기회를 다시 얻은만큼, 계간지 나름의 이점과 한계를 정확히 헤아려 우리에게 주어진 창조적 정리와 개척의 임무를 성심껏 해내려고 한다. 다만 여기서 또 한번 독자 여러분께 간곡한 당부말씀을 드릴 일이 있다. ‘창비’의 사업은 23년전 조그만 남의 출판사에 의탁하여 130여쪽의 창간호 2천부를 찍어낸 이래, 뭐니뭐니해도 엄청나게 자라고 뿌리도 깊이 내렸다. 그런데도 독자 한사람 한사람의 특별한 보살핌이 없이는 여전히 버텨나가기 힘든 것이 우리의 실정이라는 점이다. 이는 그동안 밀어주신 분들 앞에 면목이 안 서는 고백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 대목에서 우리 자신의 철저한 반성과 자체정비를 위해서도 숨겨서는 안될 사실이다. 한편 우리가 처한 어려움에는 상업주의와 무관한 양서를 공들여 펴내려는 고집도 작용했을 것이며, 저자 및 여러 관련업자들과의 정상적인 관계와 회사 내부의 민주적 절차 및 복지 문제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온 것도 우리 출판계의 현실에서는 반드시 유리한 일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변명을 앞세우기보다 이제부터 거듭 창간하고 창업하는 마음가짐으로 자기쇄신을 해나갈 것이다. 회사의 내부적 정비는 이미 착수한 터이며, 올해 안으로 잡지와 단행본의 지면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각오이다. 이 모든 일이 오로지 독자 여러분의 도움으로써만 가능한 것은 더말할 나위 없다. 우선 부탁드리건대, 첫째는 우리나름으로 정성들여 만든 이번호를 성의껏 읽고 가차없는 질정을 주실 일이며, 둘째는 창비 사업의 지속에 절대 필요한 기반을 이루는 정기구독회원 및 특별회원 모집(423면의 안내 참조)에 적극 호응해주시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계간지의 복간과 이에 대한 감격적인 호응이 없었더라면 이런 부탁을 드릴 용기도 안 났을 것이뎌 자기쇄신의 아픔을 선택할 엄두도 못 내었을지 모른다.

한편으로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다른 한편 아직도 남은 타성을 확인하면서 만든 이 기념호를 독자들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 약간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몇마디 소개의 말을 적기로 한다.

이번호는 민중예술운동을 다룬 권두의 긴 좌담과 3편의 중후한 논문을 빼면 모두가 이래저래 문학의 범주에 드는 글들로 엮어졌다. 문학중심 계간지라고 호마다 이만한 지면을 문학에 할당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이번호에는 8·15 직후부터 80년대말까지를 거의 시기별로 점검하여 특집을 방불케 하는 네 편의 문학평론에다가 때마침 입수한 몇가지 귀중한 자료와 풍성한 작품들이 합쳐, 문학 부분이 유난히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탓이다. 그러나 문학과 여타 분야의 지면의 비례가 어찌되든간, 우리의 일관된 방침은 문학도와 사회과학도와 일반독자가 전부를 함께 읽고 자신이 어느 분야에 종사하건 이 잡지 한권만은 꼭 읽어야 하겠음을 확인하는 그런 지면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좌담 「민중예술운동, 이제부터의 과제」도 그런 취지로 마련했다. 70년대부터 진행된 민중예술운동을 전체 민족민주운동과 연관지어 점검하는 동시에, 아직도 다수 국민의 정서와는 약간의 거리를 둔 특별한 운동으로서의 민중예술을 이제부터 좀더 우리 삶의 한복판에 가져오기 위해, 전문분야와 연배가 상이한 다섯 사람이 열띤 토론을 벌인 것이다. 뒤따르는 문학평론들의 관심사도 이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특히 「통일운동과 문학」과 「해방직후 남북한 문학운동과 민중성의 문제」는 민중예술 및 사회과학 분야들의 쟁점 상당수를 직접 다루고 있기도 하다. 전자는 70년대초부터 민족문학론을 펼쳐왔고 최근에는 후학들의 집중공세에 직면한 바도 있는 논자가 88년 국내 문단에서 이룩된 중요 성과와 북한문학·연변문학의 작품들까지 그 나름의 일관된 안목으로 평가하면서 전체 운동론의 정립에도 기어코자 한 글이며, 후자 역시 8·15 직후의 문학을 보되 남북한을 통틀어 보고 운동론과 구체적 작품론을 동시에 전개하고자 했다.

두 글 사이에 들어간 「신동엽론」과 「1950년대 시의 물길」은 60년대와 50년대를 각기 다룸으로써 시기적으로도 해방직후와 7~80년대를 이어준다. 두편 모두 주관이 뚜렷하면서도 섬세한 분별을 중시하는 실재비평이 시대적인 문제의식과 결합된 귀한 평문들이다. 그중 「신동엽론」은 오는 4월 시인의 20주기를 앞두고 본사로서도 진작에 내놓은 『신동엽 전집』 이외에 서사시 『금강』의 별도 간행과 시선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의 개정판 등 각종 기념행사를 계획하고 있는 시점에서, 독자들의 큰 관심을 모으리라 믿는다.

시에서 문익환씨의 운동가적 면모와 맑은 서정시인으로서의 면모를 골고루 보여주는 작품들을 비롯하여, 원로 김규동시인과 신예 허수경, 그리고 기나긴 옥고 끝에 작년 말에 우리 곁에 돌아온 김남주 시인의 신작시 10편을 산문과 함께 얻게 된 것은 이번호의 큰 수확이다. 소설쪽에서도, 청탁했던 단편 하나쯤만 더 들어왔으면 훨씬 다채로웠으리라는 아쉬움은 있으나, 중편 「새벽 출정」과 단편 「벌레」가 둘다 만만찮은 역작이 아닐까 한다. 그밖에 고은 시인의 만해문학상 수상연설과 윤영천 교수가 애써 찾아낸 배인철의 8·15 직후의 반미시가 둘다 자료적 가치 이상의 흥미를 줄 것이다. 서평란도 이번호는 문학 위주로 구성되었다. 김명수·구중서·박희병 세 분이 각기 신간 시집, 소설집 및 국문학연구서를 솜씨있게 평해주었고, 바흐찐의 역서와 연구서에 관한 설준규씨의 서평은 우리의 주체적 관점에 선 외국문학연구 전반에 걸쳐서도 많은 암시를 줄 것이다.

나머지 세 편의 논문은 그 시의성이나 내용의 무게에 있어 이번호에 편집자가 적잖이 자랑으로 여기는 항목들이다. 다만 어떤 독자에게는 너무 무겁다고 느껴질까 염려되지만, 전체적으로 문학이 많은 이번호에서는 균형을 이루는 면도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균형 여부를 떠나 이 시대의 누구에게나 중요한 문제를 필자마다 심혈을 기울여 정리한 소중한 글로서 반드시 일독해줄 것을 부탁드린다. 요즘 대거 출판되고 일부 압수되기도 하는 북한의 역사서들에 대한 강민길교수의 진지한 논의는 역사학도뿐 아니라 문학도·사회과학도·일반교양인들이 반드시 한번 읽어볼 글이며, 전문가적 진중성과 비전문독자를 위한 친절을 갖추고 씌어진 글이기도 하다. 김경일교수의 「1929년 원산총파업에 대하여」는 마침 원산파업 60주년에 즈음한 뜻깊은 재평가로서 이 방면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온 독자들에게는 새삼스런 소개가 필요없지만, 혹시 그 길이에 부담감을 느끼는 독자에게는 이런 글은 길고 자세하게 썼을 때 오히려 재미가 나는 성격임을 지적하고 싶다. 김록호씨의 「한국 의료보장제도의 정치경제적 이해」도 요즘 한창 관심거리가 된 문제에 대한 새로운 각도의 심층적 분석이며, 한꺼번에 다 싣자면 앞의 글 모지 않을 분량의 역작이다. 지면사정으로나 독자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나 이번호에 앞부분만 싣기로 했는데, 내용상 분재해도 큰 무리가 없게 되어 있고 저자 역시 흔쾌히 양해하면서 약간의 잔손질까지 보태주었다.

끝으로 대수롭지 않다면 않지만 본인들에게는 몹시 성가시고 독자들에게도 다소 곤혹스러운 몬제 한가지. 본래 우리나라에서 김씨가 제일 흔한 성인데 ‘종철’도 흔한 이름이다보니, 요즘 평단에서 활약하는 ‘김종철’만도 너댓은 되는 사태가 벌어져 있다. 그중 ‘창비’의 지면을 활용한 사람만 해도 『한국문학의 현단계』로 등단하여 현재 한겨레신문사 논설위원인 金鍾澈씨와 강릉대에 재직중인 신진 국문학도로서 본지 62호에 서평을 기고한 또 하나의 金鍾澈씨, 그리고 본지의 오랜 필자이며 영남대 영문과 교수이기도 한 이번호 신동엽론의 집필자 金鍾哲씨가 있다. 특히 이번호의 필자는 ‘김종철’이라는 이름을 대하면 자기가 쓴 글인지 남이 쓴 글인지 스스로도 어리둥절해진다고 술회하고 있으니, 이 기회에 한마디 해명이 독자들에게도 전혀 불필요한 일은 아니지 싶다.
 

『창작과비평』1989년 봄호 책머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