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책머리에] 활동적 중심의 재건
기괴한 합작 속에 이루어진 전두환씨 청문회로 새해 벽두부터 어수선하더니, 국민들의 엄연한 눈 앞에서 과감하고도 대담하게 3당이 통합하는 정계 개편의 회오리 속에서 경오년이 밝아왔다. 1990년대를 여는 경건한 새 아침에 이 무슨 상서롭지 못한 징조인가! 여당 총재의 회견에 이른바 야당 총재들이 좌청룡 우백호로 배석한 이 기묘한 그림 앞에서. 다수 국민들은 정치적 허무주의의 깊은 늪으로 아득한 추락을 경험했던 것이다.
그것도 하필 일본을 모방하다니. 국민의 중지를 모아 독창적인 민주주의 모형을 창출해도 모자란 판에, 이제는 위기에 몰린 일본 자민당의 낡은 모형을 모방해서 어찌할 것인가. 가칭 민자당이 내부의 삐걱거림을 제대로 극복해낼지도 아직 미지수이거니와, 설령 제대로 출범한다 해도 우리 사회의 진정한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의 뿌리인 국민대중과 유리된 채 파벌간의 막후절충으로 시종하는 일본 자민당의 행태에서 보듯이 가칭 민자당 또한 민주주의의 후퇴를 야기할 것은 불을 보듯 환하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하염없이 한탄만 할 수는 없다. 민자당의 출현을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틀로 삼음으로써 거대한 희망을 조직하자. 지난 대통령 선거 이후 분열을 거듭했던 모든 민족민주세력은 냉엄한 자기반성을 통해 대중의 역량을 넉넉히 품어 전진할 수 있는 활동적 중심으로 거듭나야 한다.
20세기의 막바지에 세계는 격동하고 있다. 최근 동유럽 사회를 휩쓸고 있는 새로운 변화의 물결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한데, 이 사태를 단순히 사회주의의 파탄으로 보는 협애한 시각도 문제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스딸린주의의 청산을 통한 사회주의의 강화로만 보는 관점도 온당한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제출된 사회주의적 실험도 일정한 반성기에 들어선 우리들의 시대는 분명 위기의 시대이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위기의 시대야말로 창조적 도전으로 충만한 축복의 시대가 아닌가. 우익독재이든 좌익독재이든 중앙통제 방식으로는 복잡다기하게 얽힌 모순을 올바르게 해결할 수 없음이 이제는 분명해졌으니, 근본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창조적인 사고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이번호에는 권두좌담 대신에 네 분이 참여하는 ‘90년대 민족문학을 위한 제언’이라는 특집을 마련했다. 민족문학계의 어른으로서 창작자의 입장에서 특유의 아포리즘으로 90년대 민족문학을 선포하고 있는 고은 시인의 「문학이 이끄는 사회와 역사」나, 자신에게 가해진 비판에 진지하게 응답하면서 끝없이 자신의 문학론을 갱신해 나가는 백낙청 교수의 「지혜의 시대를 위하여」는 물론이고, 신예로서의 날카로움에 그간의 문학적 성과들에 대한 자상한 분석을 단단하게 결합시킨 김명환씨의 「90년대 문학운동의 새로운 전망」과 여성해방문학론의 입장에서 민족문학의 이론과 성과들을 진지하게 점검한 이명호씨 등의 「여성해방문학론에서 본 80년대 문학」 – 이 모두가 특집 원고로서 손색이 없다. 그간의 첨예한 이론투쟁 과정에서 파생한 몇가지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생산적인 토론 자료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지난호의 J. 쿠친스키 대담에 이어 이번호에서는 F. 제임슨의 대담을 낸다. 맑시즘·포스트모더니즘·민족문화운동 – 얼핏 서로 상충하는 듯한 세 개의 운동을 해박하고 명쾌하게 정리함으로써 우리 문학운동의 방향 모색에 풍부한 암시를 던져주는 이 대담은 특집과 함께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될 것이다.
1910년대의 대표적인 단편 양건식의 「슬픈 모순」(1918)을 소개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 작품은 북한 문학사에서 높이 평가된 것인데, 원래 발표된 잡지 『반도시론』을 구할 수 없어 국문학계가 매우 궁금한 차에 있었다. 학구적 집념으로 이 작품을 발굴하여 적절한 해설까지 붙여준 양문규 교수에게 감사하는 바이다. 함께 싣는 김성수씨의 「우리 문학에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발생」과 어울려, 식민지시대 초기의 사실주의 문제에 대한 논의가 심화될 것으로 믿는다.
시와 소설도 풍성하다. 시의 경우, 신경림·최하림 두 분의 선배시인과 함께 이재무·이승철·김용락·박영희 등 후배시인들, 그리고 신인 조성국씨까지 어우러졌다. 소설 쪽도 손춘익씨의 단편을 비롯해서, 역작 『황해』(1989)를 낸 이원규씨는 중편 「신열」을, 「새벽출정」으로 이미 날카로운 주목을 받은 신예작가 방현석씨는 중편 「내일을 여는 집」을 기고해주었다. 특히 「내일을 여는 집」은 감동적이다. 사건을 따라가는 데 급급한 노동소설의 일반적인 틀을 시원하게 극복한 90년대 문학의 길조가 아닐 수 없다.
특집에서 네 편의 서평에 이르기까지 문학 쪽의 풍성함에 비해 다른 분야가 적어진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우리가 새롭게 시작하는 연속기획 ‘ 한국사회 계급론의 쟁점’에 실린 두 편의 논문은 그런 아쉬움을 충분히 상쇄할 노작들임을 내세우고 싶다. 80년대에 활발하게 이루어진 한국사회 계급연구의 여러 성과들을 자상하게 검토하고 비판적 대안까지 제시해준 신광영 교수의 「90년대 한국사회 계급연구의 심화를 위하여」와, 노동운동의 실천적 쟁점과 긴밀히 연결된 노동자계급 범위 설정 문제를 다분히 논쟁적으로 제기해준 김형기 교수의 「한국사회 노동자계급론의 모색」은 민족민주운동에 참여하고 또 지켜보는 사회과학 연구자와 일반 독자 모두의 커다란 관심을 모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시영 주간이 구속 70여일 만에 출감했다. 이같은 작태를 개탄하면서 언론·출판의 자유를 위해 옥고를 치른 이주간에게 위로를 드리며 그동안 이주간의 구속을 염려하고 그 석방을 위해 아낌없이 성원해주신 국내외의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어 머리 숙여 감사하는 바이다.
이주간의 복귀와 함께 지난호 권두언에서 밝혔듯이 90년대를 감당할 창비의 자기쇄신 작업을 착실하게 추진해나갈 것이다. 모쪼록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활동적 중심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 창비가 겸허한 초석이 될 수 있도록 90년대에도 독자들이 엄중한 눈길을 바라 마지않는다.
『창작과비평』1990년 2월 봄호 책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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